[메디먼트뉴스 박민우 기자] 16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 경기 시작하기 직전 오후 3시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졌다. 입꼬리가 올라간 허재(57) 전 농구대표팀 감독이 심판 복장을 입고 한 손에 휘슬을 쥔 채 코트 사이드라인에 서 있었다. 허 전 감독이 하프라인에 공을 들고 나오자 양 팀의 주장인 첫째 아들 허웅(29·DB)과 둘째 아들 허훈(27·KT)이 나란히 섰다. “형, 선 넘었잖아!” 허훈이 장난스럽게 소리치자 허웅이 살짝 웃었다. 허 전 감독이 위로 높이 던진 공을 허웅이 본인 진영으로 쳐냈다.

점프볼과 함께 대구체육관을 가득 채운 3300명 관중이 함성을 지르면서, 지난해 코로나로 연기되고 2년 만에 팬들과 함께 하게 된 한국농구연맹(KBL) 올스타전이 시작됐다. 나란히 팬투표 1, 2위를 차지한 허웅과 허훈이 지난 3일 3~24위 선수들을 상대로 번갈아가며 지명해 ‘팀 허웅’과 ‘팀 허훈’을 꾸렸다. 올스타전 각 팀 주장으로 나선 두 아들을 위해 아버지 허 전 감독이 ‘1쿼터 특별 심판’으로 직접 나섰다.

아버지를 의식한 듯 두 아들이 계속 맞붙었다. 허훈이 허웅을 상대로 한 첫 공격에서 슛을 쏘려다 세 걸음 이상 걷는 트레블링 콜을 받았다. 허훈이 항의했으나 심판복을 입은 허 전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도 형제 둘이 경합하다 공이 코트 밖으로 나가자 허 전 감독이 ‘팀 허웅’의 공격권을 선언했다. 허훈이 또 달려오자 허 전 감독은 묵묵히 양 손으로 알파벳 티(T)를 만들었다. 심판에게 과한 항의를 하는 선수에게 주는 테크니컬 반칙(Technical foul)을 받고 싶냐는 뜻이었다. 허훈이 움찔하더니 뒤로 황급히 도망쳤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왕성히 활동 중인 아버지와 그 끼를 물려 받은 둘째 아들의 완벽한 ‘개그 콩트’였다.

허씨 삼부자 말고도 선수들이 많은 볼거리를 준비해 왔다. 최준용(SK)은 선수 소개 때 상하의를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뽀로로처럼 입고 춤을 췄다. 201cm의 ‘대형 뽀로로’를 처음 봤을 듯한 팬들이 크게 웃었다. 귀화 선수 라건아(KCC)가 미리 준비한 가짜 돈을 뿌리면서 스웨그(멋을 가리키는 은어)를 뽐내자 환호가 들려왔다. 2쿼터를 시작한 경기장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선수들이 다들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전반전이 끝나고는 고려대 입학 예정인 여준석(용산고)이 덩크 콘테스트에 특별 초청 받아 나왔다. 형들 앞에서 화려한 백덩크를 꽂아 넣었는데, 하윤기(KT)가 마블 영화 ‘어벤져스’의 헐크 의상을 입고 나와 팔을 풍차처럼 돌리는 ‘윈드밀 덩크’를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 ‘한 수’ 지도했다.

이번 올스타전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진지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3쿼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 허훈이 팀 동료들을 향해 “집중하자!”라고 소리친 걸 계기로 경기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정식 경기에서만 나오는 수비 전술이 펼쳐지며 경기가 좀 거칠어졌다. 경기는 허웅이 2점 차(113-111)로 쫓기던 경기 종료 2분23초 전 3점 슛을 터뜨린 데 이어 허훈이 다음 슛을 놓치면서 허웅 팀으로 승리가 기울어졌고, 경기는 120대117로 마무리됐다. 허웅은 기자단 투표 71표 중 62표를 받아 프로 데뷔 후 첫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 영예를 안았다. 허웅은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MVP를 못 받았다면 죄송했을 것”이라며 “많은 사랑에 책임감을 갖고 보답하겠다”고 했다. 경기 내내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던 허훈은 “아버지가 (반칙을) 다 불어버리니까 당황스러웠다. 아버지는 심판 재능이 없다”며 마지막까지 웃음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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