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켄 로치 감독 작품
제72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메디먼트뉴스 김제호 인턴기자] '미안해요, 리키'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유명한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영화다. 켄 로치 감독은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이 짙다. 과거 영국의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수상이 타계했을 때, "그녀의 장례식도 민영화를 해야한다."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미안해요, 리키' 역시 켄 로치 감독의 시선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체제 아래에서 사라져가는 사람 사이의 온정을 담아냈다. 이 작품이 칸 영화제에서 경쟁했던 작품들이 비슷한 주제의 '기생충'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시기 영화계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리키'는 돌봄 서비스 간병인인 아내 '애비'와 사춘기 아들 '세브', 초등학생 딸 '라이사'와 살고 있다. 금융위기로 실업자가 된 리키는 일용직을 전전하지만 가족들과의 안정적인 삶과 내집마련을 위해 힘든 택배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리키는 보험도 직접 내고, 택배 운송 차량도 직접 사야하는 자영업자임에도 사실상 택배 업체의 직원으로서 주6, 14시간씩 일하게 된다. 아내 애비도 자기를 괴롭히는 간병인과 일에 시달려 지쳐있다. 그 와중 사춘기 아들 세브는 학교를 결석하고, 도둑질을 하는 등 리키와 애비의 속만 썩이게 되고, 리키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미안해요 리키'는 국내에서는 2019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그 당시 이 영화는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로 상영되었다.  

작품 내에서 'Sorry, We missed you'는 택배 수신자가 부재중일 때 택배 기사들이 남기는 쪽지의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고조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 문구는 다시 등장한다.

'우리가 당신을 놓쳤어요.' 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사회와 정부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들을 놓쳤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가 될 수도, 내 이웃일 수도 있다.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을 통해 광범위한 인류애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제목이 국내에서 '미안해요, 리키'로 바뀌어 상영된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영화의 특이한 점은 주연들이 모두 배우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리키'역의 크리스 히친은 이 영화 이전까지 연기 경험이 없는 배관공 출신이다. 부인 '에비'역의 데비 허니우드 역시 보조 교사 출신이다. 해당 영화가 서민들의 일상과 그 속의 처절함을 드러내야 했기에, 켄로치 감독이 의도적으로 연기 경험이 없는 이들을 캐스팅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영화의 배경인 뉴캐슬과 주인공 리키의 고향인 맨체스터는 마가렛 대처 시절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지역이다. 작중에서 리키가 실직자가 된 배경 역시 2008년 금융위기다. 그렇기에 켄 로치 감독은 '미안해요, 리키'를 통해 현 자본주의 체제와 모순을 다시금 짚으려 한다. 

'숨이 턱 막힌다'는 말 만큼 이 영화에 어울리는 표현은 없다. 리키와 에비의 가족은 부유하고 늘 화목하진 않지만 그래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단란한 감독이다. 그런 그들이 삶에 지쳐 여유를 잃어가고 감정적으로 예민해지고 거칠어지는 과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가족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심각하게 잘못한 사람은 없다. 리키와 에비는 휴식 없이 미친듯이 가족을 위해 일한다. 에비는 환자들의 투정과 짜증을 받아낸다. 휴일에도 갑작스러운 연락에 출근하여 노인들의 대변을 치운다.

리키에게 휴식은 허락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해도 벌금을 내야한다. 폭행을 당했음에도, 택배 배달에 필요한 기기가 파손되었다는 이유로 돈을 물어내라고 요구받는다. 특히 폭행을 당한 상태로 가족을 위해 다시금 택배를 배송하러 가는 리키의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숨이 멎을 것 같다. 

이렇게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회의 싸늘함과 모순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특히 이 영화는 OST도 없고 먼 발치에서 관찰하듯이 촬영하는 씬들이 많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정답을 제시하기 보단, 차가운 현실을 고발하는 느낌이 강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노동 시간과 관련된 정책때문에 시끌시끌하다.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이해관계는 차치하더라도, 노동 정책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시해야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대한 직접적 이해와 인간을 기계로 보지 않는 따뜻한 시선이 아닐까 싶다. 그런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는 영화, '미안해요 리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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